AutoReserveAutoReserve
전원 지역에 자리한 집 한채, 【덴푸라 쿠루마】 구루마자키 토모야 씨가 추구하는 향과 철학
2026/3/25

전원 지역에 자리한 집 한채, 【덴푸라 쿠루마】 구루마자키 토모야 씨가 추구하는 향과 철학

군마현 다테바야시시의 전원 지대에 자리한 단독주택형 튀김 전문점 ‘덴푸라 구루마’. 카운터 너머에서 갓 튀겨 나오는 덴푸라는 가볍고 향이 풍부하다. 주인장 구루마자키 토모야 씨는 스무 살 때 ‘긴자 텐이치’에서 먹은 덴푸라에 큰 감명을 받아, 덴푸라의 깊은 세계에 빠져들게되었다. 노포 덴푸라 그룹과 일본 요릿집에서의 수련을 거쳐 2014년에 독립·개업. 재료가 간직한 향과 신선함을 소중히 하면서, 덴푸라라는 요리의 깊이와 한 접시에 담아내는 장인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맛있는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농부였기 때문에, 모내기나 벼 베기가 끝나는시기마다 ‘사나보리(농사일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신께 감사드리고, 일꾼들을 위로하기 위해 베푸는 잔치)’를 하면서, 1년에 몇 번은 평소보다 좋은 외식을 하러 나갈 기회가 있었고, 카운터 ‘스시’나 ‘고기’ 같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맛있는 음식을 내가 직접 만들 수 있으면 먹을 기회를 더 늘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원래 요리하는 것 자체도 좋아해서, 그렇다면 요리사가 될까 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요리사를 목표로 하는 마음이 굳어졌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사이타마의 조리사 학교에 진학해, 그 후 【긴자 텐이치】에 취직했습니다.

학생 시절에 했던 아르바이트도 전부 조리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조리사 학교에 다닐 때는 스시집에서 일했어요. 이렇게 음식·요식업 쪽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제게 가장 힘들지 않게 느껴지는 노동이 바로 조리 일이었습니다. 마지못해 가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 중에서라면, 당연히 후자가 천직에 더 가깝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수행 장소를 선택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조리사 학교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것이 계기였습니다. 폭넓게 일본 요리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몇 년간 튀김집에서 일한 뒤에 그 후에는 일본 요릿집에서도 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리사의 세계는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서, 문턱이 낮고 의외로 합격하기 쉽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30명 정도가 있지만, 거기서부터 걸러져서 몇 년이 지나 5~6명 정도 남으면 좋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다니던 조리사 학교에서 【긴자 텐이치】에 취직한 것은 제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제가 제대로 일을 해내면 이듬해 이후에도 학교에서 몇 명은 더 뽑기 쉬워질 것이라고, 조리사 학교의 간판을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긴자 텐이치】에서는 20살부터 25살까지 5년 동안 신세를 졌습니다. 튀김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튀김이 메인이 되기 때문에, 언젠가 독립해서 가게를 낸다면 회, 조림, 구이 같은 튀김 이외의 요리도 코스에 포함시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폭넓게 배울 수 있는 일식집을 찾고 있을 때, 조리사 학교에서 신세를 졌던 선생님께 소개를 받아 고향의 일본요리점으로 다시 취직하게 됐습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였지만, 제가 수련하던 당시에는 연회도 받고 있어서 주말이면 예약으로 가게가 가득 차는 일이 많았고, 한 번에 200명 손님을 상대해야 할 때도 있을 정도로 무척 바쁜 환경이었습니다.

튀김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체험

———튀김의 매력에 눈뜨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긴자 텐이치】에 취직했을 때, 튀김이 이렇게까지 맛있는 음식인가 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튀김이라고 하면 두세 개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해지는 이미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튀김에 따라서는 열 개를 먹어도 전혀 부담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속이 더부룩해지지 않게 튀기는 방법, 튀김옷을 입히는 방법이 따로 있는데, 제가 스무 살 때 【긴자 텐이치】에서 먹었던 튀김은, 그때까지 제가 알고 있던 튀김의 상식을 바꿔 버릴 정도로 완전히 다른 음식처럼 느껴졌습니다. 튀김에 대한 개념을 바꾸는 일은 역시 튀김집 스스로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의 고정관념(개념)를 바꾸는 일은 정말 보람 있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지금도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하다면 그건 실격이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공정을 하나하나 밟고, 정성스럽게 마무리하는 것이 요리사의 일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만약 드시고 체하셨다고 해서 “그럼 돈은 안 받겠습니다”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요. 그래도 그 정도로 부담 없이 가볍게 드실 수 있다고 느끼지 못하신다면, 손님은 다시는 가게에 오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매일 스스로를 채찍질 하면서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련 시절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먼저 놀랐던 건, 튀기는 사람에 따라 기름 온도 범위도, 옷의 진하기도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고바야시 씨라고, 튀김 옷을 만드는 법도 뛰어나고 일도 아주 깔끔한 분이 있었어요. 일한 지 3년째 되던 무렵, 배치가 바뀌어 다른 점포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그분 옆에서 보조로 붙어 직접 가르침을 받은 기간이 약 2년 정도 있었습니다. 그 후 고바야시 씨가 다른 곳으로 옮기고, 다른 분이 교대로 오게 되었는데, 그 가게에 남아 있던 2년 동안 여러 명의 튀김 담당자를 지켜본 결과, 제 감각으로는 고바야시 씨의 튀김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일을 봐도 그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도 그 이상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제게는 그의 튀김이 곧 최고였고, 제 자신의 기초도 어느 정도 다져졌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어도 제 튀김 실력은 더 이상 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일본 요리를 더 공부해서 언젠가 독립해야겠다고 마음먹기 시작했습니다.

고바야시 씨는 지금은 이미 은퇴하셨지만, 은퇴하실 때까지 독립하지 않고 【긴자 텐이치】에서 계속 일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독립해서 가게를 열고, 몇 년 뒤에 【긴자 텐이치】 본사에 전화를 걸어 어디에 계신지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지명해서 고바야시 씨의 튀김을 먹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긴자 텐이치 니혼바시 무로마치점】에 계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막 발령을 받아 옮기신 직후의 고바야시 씨를 만나 뵐 수 있었는데, 그곳은 가스불이 아니라 IH 콘로를 쓰고 있고, 본인도 나이를 많이 드셔서인지 “고맙지만, 그때의 튀김을 나는 이제 더 이상 튀길 수 없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독립해서 가게를 연 가장 큰 계기는 고바야시 씨에게 배운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저는 고바야시 씨의 튀김을 꼭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게가 바빠지면서 점장님과 교대하는 시간이 되어버렸고, 결국 고바야시 씨의 튀김은 끝내 먹지 못했습니다. 예전과 달라졌다고 해도, 그의 튀김을 먹어 보고 싶었어요. 저도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튀김을 만들어 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 이상적인 가게를 실현하기 위해

—— 독립해서 창업하실 때의 에피소드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긴자 텐이치】에서 5년, 고향의 일본 요리점에서 10년을 근무한 뒤 2014년 8월 25일에 【덴푸라 쿠루마】를 오픈했습니다. 원래는 5월쯤에 오픈할 생각이어서 2013년 말에 고향의 일본 요리점을 그만두고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은행 관련 문제나 부지 신청 등의 사정으로 8월까지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은 심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버텼는데, 그 시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본가의 땅을 개조해 가게를 차렸는데, 원래는 일본식 가옥과 그 옆에 정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취미로 큰 바위가 놓여 있고, 소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하나의 정원이었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어 나무와 돌을 치우고, 그와 이어진 땅을 평탄하게 정비한 뒤 그 위에 가게를 지었습니다. 점포와 주차장 사이를 바위로 흙막이를 해 두었는데, 정원에 있던 큰 바위를 흙막이용으로 사용해 석축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본가 대지에 짓기로 한 이유는, 만약 임차해서 가게를 하면 제약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길가에 있는 점포나 입지가 좋은 곳은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가게가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힘들어도 쉽게 철수할 수가 없잖아요. 본가 대지라면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1~2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그만둘 수 있잖습니까. 아직 단골손님도 붙지 않은 상태에서 수천만 엔을 빌린다고 하면, 가게 건물은 세워졌는데 손님이 오지 않으면 결국 망할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생각한 콘셉트는, 현관에서 신을 벗는 듯한, 논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는 단독주택의 카운터에서 튀김을 튀겨 내는 가게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아내가 “재미있겠다”라며 동의해 줬습니다. 다만, 은행에서는 상당히 대출을 꺼려하더군요(웃음). 개인이 하는 음식점으로는 고급 지향의 전례가 거의 없었던 모양이라, “정말 괜찮으시겠어요?”라는 식으로 시간을 끌며 더 대출이 지연됐습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꽤 엄격하게 사업 계획을 다듬은 끝에, 겨우 대출을 받을 수 있었어요. 다테바야시 시내였다면 보조금이나 지원금이 있었겠지만, 이곳은 시가화 조정 구역이라 논과 밭을 남기고 싶다는 방침이 있어서, 아무런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대출과 제 손에 쥔 자금만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번과 같은 취재나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덴푸라 쿠루마】의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시청 쪽에서 고향납세 협력을 요청해 와서, 지금은 고향납세도 하고 있어요. 다테바야시시에 5만 엔을 기부하시면, 1만5천 엔 상당의 식사권을 드리고 있습니다.

신선함과 향에 대한 고집

— 요리나 식재료에 관해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점이 있나요?

기본적으로는 ‘수제’입니다. 저만의 신념으로, 업소용 반찬이나 화학조미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농약이긴 해도 방부제나 왁스가 쓰인 것들이 있기 때문에 수입 식재료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습니다. [덴푸라 쿠루마]에서 사용하는 것은 시장에서 들여오는 생선, 지역 채소 직판장, 농가에서 직접 공수하는 등으로 확보한 신선도가 매우 높은 식재료입니다. 요리에 관해서는 제가 직접 보고 ‘쓰고 싶다’고 느끼는 것만 골라서 들여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향’입니다. 돈을 내고 식사를 하는 이상, 맛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니 그건 대전제로 두고, 저는 식재료의 향과 식감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향이 없으면 맛도 느껴지지 않아서, 코를 막고 먹으면 뭘 먹고 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 정도로 향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향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신선도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채소도 시간이 지나면 겉모습은 변하지 않아도 향이 빠지고 맛이 옅어지고, 채소든 생선이든 재료 자체가 좋지 않으면 역시 좋은 향이 나지 않습니다.

재료는 주 3회에 나누어 들여오는데, 【덴푸라 쿠루마】는 수요일이 정기휴일이라 월·목·토요일에 각각 이틀치 분량을 사 옵니다. 이렇게 하면 식재료 폐기가 줄어들고, 자주 들여와서 신선한 재료를 갖출 수 있죠. 도요스 시장까지는 다테바야시에서 고속도로로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리기 때문에 새벽 4시 반쯤에 출발합니다. 출발이 늦어지면 정체에 걸려서 원하는 생선을 못 사는 일도 생기니 곤란하거든요. 꼭 필요한 것은 미리 주문해 둘 수도 있지만, 당일에 직접 보면서 고르고 싶은 재료도 있어서, 일찍 도착해 제 눈으로 꼼꼼히 살펴보는 것 또한 식재료에 대한 고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쌓아 가는 노력만이 디테일을 완성한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들려주세요.

2026년 8월 25일에 리뉴얼을 앞두고 있습니다! 더 나은 공간에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여유있게 식사를 즐기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여러 지점으로 확장하는 것 등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저 【덴푸라 쿠루마】에 식사하러 와 주시고, 덴푸라를 맛있다고 느껴 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 뿐입니다.단골손님도 새로 오시는 분들도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라, 거창한 계획 같은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일 손님과 덴푸라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그 이상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일은 날마다 쌓아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게를 늘린다고 해도, 같은 품질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고 보고 있고요. 매일 냄비 앞에 서 있어야, 지금 냄비 안의 기름 상태가 어떤지, 온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스시 장인들도 감각만으로 대략 샤리(초밥 밥)의 그램 수를 알게 되잖아요. 매일 식재료와 마주하는 장인이기 때문에, 오늘은 평소보다 재료에 힘이 없네 같은 것도 느낄 수 있게 되는 거죠.예를 들어 생선인 키스(실고기)는 산지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에도마에(도쿄만산)는 살이 두툼하기도 합니다. 길이는 같아도 다른 산지 것보다 에도마에가 더 포슬포슬하네, 하는 감각은 매일 만져 보니까 알게 되는 것이고, 오늘 처음 만져 본 사람은 아마도 알기 어려울 겁니다.사소한 부분이지만, 손님에게 그 차이가 전해지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더 좋은 것을 고집하며, 최고의 상태로 손님께 내고 싶기 때문에 생기는 고집입니다.

매일이 반복되다 보니 변함없고 단조롭게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저에게는 매일 하는 작업이 같더라도 그 내용은 어제와는 다릅니다. 튀김 옷을 만드는 일 하나만 놓고 봐도, 천 번 반죽하면 천 가지의 튀김옷이 나오는 셈이고, 밀가루 입자가 열 알만 달라도 당연히 다른 튀김 옷이 완성됩니다. 계량도 세세하게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매일 튀김 옷을 만들면서 ‘오늘은 옷 상태가 좋았다’, ‘어제보다 별로였다’ 같은, 손님에게는 전혀 전해지지 않는 사소한 부분까지 늘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정확한 튀김 옷을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성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일이 도전입니다. 요리의 완성도는 정말 사람마다 다르고, 제 안에서도 편차가 있기 때문에, 얼마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계속해서 단련해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쿠루마자키님께 있어서 ‘맛있다’란 무엇인가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경험은 ‘궁극의 사치품’이라고 할 수 있죠. 특별한 타이밍에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기념일에 시계나 지갑 같은 것을 사면 형태로도 남잖아요. 그 후에도 소중히 계속 사용할 수 있고요. 그런데 음식의 경우는 ‘아, 맛있었지’라는 경험은 남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아무 형태로도 남지 않잖아요. 찍어 두면 사진은 남지만, 결국 추억밖에 남지 않는 기호품인 거죠. 시계와 똑같은 값을 지불하고 식사를 하더라도, 남는 것은 그때의 인상이나 맛있었다는 기억뿐이라는 것을 알고도, 1~2시간이면 끝나 버리는 식사 경험을 선택해 주시는 겁니다. 먼 곳에서 몇 시간이나 걸려 오시는 분이든, 차로 5분 거리에서 오시는 분이든, 모두 일부러 찾아와 주시는 거니까, 그 마음에 보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요리로서의 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리는 먹고 나면 사라져 버리고, 남는 것은 ‘맛있었다’라는 형태 없는 기호품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즐기러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마음에 응답할 수 있는지가 요리사의 일이라고 쿠루마자키 씨는 말한다. 최상의 상태로 내기 위해 재료의 신선도에 집착하고, 기름의 상태와 튀김옷의 두께, 식재료의 수분량을 살피며 매일같이 냄비 앞에 선다. 어제와 똑같아 보이는 작업 속에서도, 매일 다른 발견과 도전이 있다. 쿠루마자키 씨가 쌓아 온 시간이 깃든 튀김을, 꼭 【텐푸라 쿠루마】에서 맛보는 건 어떨까.

취재·글/AutoReserve Magazine 편집부

촬영/바바 쇼이치

매장 정보

  1. AutoReserve 매거진
  2. 세계에 자랑하는 일본의 명가
  3. 전원 지역에 자리한 집 한채, 【덴푸라 쿠루마】 구루마자키 토모야 씨가 추구하는 향과 철학
전원 지역에 자리한 집 한채, 【덴푸라 쿠루마】 구루마자키 토모야 씨가 추구하는 향과 철학 | AutoReserve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