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키토리 【토리시키】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후쿠시마현산 「다테도리(伊達鶏)」 한 마리를 다 사용하면서 손님들이「이제 그만!!」이라고 외치실 때까지, 그리고 식재료와 시간이 허락되는 한 계속해서 오마카세 꼬치를 제공하는 스타일이에요. 「다테도리(伊達鶏)」는 부위별로 구워서 제철 야채를 포함해 항상 25종 정도를 준비해 놓고 마무리는 손님들의 상태에 맞춰서 밥 종류 등의 식사를 고를 수 있게 준비해놓죠.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닭을 사용해 보았지만 「다테도리(伊達鶏)」는 와카도리(若鶏)와 지도리(地鶏)의 중간 정도의 육질로 구웠을 때에도 부드러움이 확실히 남아 있으면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감칠맛이 특징으로, 부위를 바꿔가면서 계속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에 숯불로 구워내는【토리시키】스타일과 궁합이 좋은 닭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것들을 의식하며 재료 등을 준비하고 있나요?
제일 먼저는 「소재를 아는」것. 같은 닭이라도 계절에 따라서 육질이나 지방이 붙는 방식, 근육이 채워지는 방식 등 하나 하나 모두 차이가 있죠. 야채도 껍질이나 과육의 감칠맛, 수분량 등의 개인차가 존재해요. 다른 닭과의 개성이나 특징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불에 구울 때에 균일하게 열이 가해지도록 닭의 크기나 형태, 손님들이 드실 때의 식감까지 상상하면서 한 마리에서 부위별로 자르고 있어요.
다음으로는 고기의 중심에 꼬치를 꽂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중심에서 벗어나면 불에 구울 때 일정하게 열이 가해지지 않는다거나 꼬치를 돌렸을 때 고기가 움직여서 육즙이 빠져나와 버리죠. 그렇기 때문에 열의 전달 방법을 생각하고 손 끝의 감촉을 확인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꼬치에 꽂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재를 간파한 뒤에 접근하는 방식이군요. 불에 관해서는 어떤가요?
숯불의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열량과 향이라고 할 수 있죠. 한번에 구워냄으로써 열을 안에 가두고, 감칠맛으로 바꾸면서, 콧속을 간지럽히는 어딘가 그리운 향과 그 끝에 있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건 숯불이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숯 역시 장인들이 가마에서 구워내는 자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같은 숯이라고 해서 크기나 형태가 같진 않죠. 계절에 따라서 숯의 수분량도 바뀌기 때문에 가볍게 두드려보고 그 소리로 숯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어요. 숯이 어느 정도의 열량을 발할 수 있을지 예측하면서 열량이 균일해지도록 숯을 쌓고 있어요. 이 작업은 야키토리가 맛있게 구워지는 것을 좌우하는 생명선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한 편으로는 그러한 숯의 특성은 맛있게 구워내는데 있어서 불안정한 요소가 될 수도 있죠. 「소재를 아는」것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는「자연이 만들어낸 불안정함」을 전부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꼬치에 대해서 얼마나 집중하고 개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오감을 갈고 닦으면서 매 순간 대치해 나가는 어려움과 재미가 있죠. 굽는 과정에 있어서의 소재의 변화(부풀어오르는 정도나 색의 변화 등)를 간파하고 어떻게 개성을 살리면서 맛있게 구워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요리의 길로 들어선지 20년 이상 지났지만 아직까지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꼬치라고 단언할 수 있는 감각에는 도달하지 못했어요. 야키토리란 날마다「어떻게 하면 더욱 맛있어질까」라고 고민하게 만드는 매우 깊고도 심오한 세계인 것 같아요.
―――야키토리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40년 정도 전, 제가 자란 도쿄 시타마치(下町)의 상점가는 저녁이 되면 수많은 주민들로 북적거렸어요. 친구랑 놀다가 배가 고파서 집에 돌아가는 도중에 맛있는 야키토리 냄새가 거리에 가득 찼죠. 그 당시의 야키토리는 초등학생의 용돈 정도로 살 수 있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동전을 손에 꽉 쥐고 친구와 자주 사먹곤 했어요. 어머니가 사오신 야키토리가 식탁에 올라와 있던 적도 있었고, 아버지가 가끔 데리고 가주신 이자카야에도 야키토리가 있었죠. 그 당시의 풍경과 매콤달콤한 소스, 숯불 냄새, 감정이 고양되던 감각은 지금도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어요. 야키토리는 저에게 있어서「맛있는 요리」의 원점인 거죠.
이건【토리시키】의 이름으로도 이어지는데 가게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야키토리를 통해 손님들께 전달하고 싶은게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두 가지가 떠올랐어요. 하나는 어렸을 적 야키토리에서 느꼈던 고양감이었죠. 제가 구운 야키토리를 통해 웃음이 만들어지고「내일도 힘내야지」등과 같이 손님들 저마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그런 가게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두번째로는 야키토리는 다른 요리에 비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요리를 통해서 일본의 아름다운「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사기의「시키(士気) 」와 사계의「시키(四季) 」의 두 가지 뜻을 담아서 【토리시키】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요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에 대해 들려주세요.
직업으로서 의식하게 된 건 20살 때 즈음이었어요. 친구네 부모님이 하시는 야키토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너무 재밌었죠. 어렸을 때의 야키토리의 추억이 겹치면서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좋아하는 야키토리를 직업으로 할 수 있다면 후회가 없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면서 언젠가 내 가게를 갖고 싶다고 그 때 결심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세상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에는 먼저 사회 경험을 하기로 택했어요.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음식업계의 입지나 고객의 니즈를 이해한 후에 수행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죠. 인재파견 회사에 취직해서 평일에는 영업직을, 휴일에는 제가 열고 싶은 가게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야키토리를 먹으러 돌아다녔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SNS라던지 맛집 사이트도 없었기 때문에 한 손에 잡지를 들고 서민적인 가게부터 고급 음식점까지 3년 동안 야키토리집 100군데 정도를 찾아다닌 것 같아요.
―――100군데요!? 도쿄의 야키토리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것들을 느꼈나요?
지금에 와서는 그저 젊은 혈기였던 것 같아서 부끄러운데「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어요. 닭에 꼬치를 꽂아서 굽는 것 뿐이고, 2년 정도 수행하면 대부분의 것은 다 배우고 내 가게를 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완전 가볍게 생각했었죠. 여러 가게를 찾아다니면서 가장 임팩트가 강했던 건 이후에 제가 직접 수행을 했던 나카메구로의 【토리요시】였어요.
제가 알고 있던 이자카야 메뉴 중 하나인 대중적인 야키토리와는 달리 고급 스시집처럼 야키토리를 내고 있었죠. 장인들의 빈틈 없는 솜씨, 야키토리에 와인을 곁들이며 식사로서 즐기고 있는 손님들의 분위기에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가게를 열게 된다면 이런 가게를 목표로 하고 싶다고, 수행을 한다면 이 가게밖에 없다! 라고 생각했죠.
100군데 정도의 야키토리집을 찾아다니면서 도쿄의 야키토리는 다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에는 가게마다의 야키토리의 특징보다는 실내 인테리어라던지 장인의 모습이 멋있다던지 외적인 부분밖에 보지 못했어요. 일의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수행을 시작하고부터였죠.
―――수행 시절 인상에 남은 것이 있나요?
수행 중은 정말 고생의 연속이었어요. 당시에 저와 같은 수행 동기가 7~8명 있었는데 처음 1년은 「오이마와시(追いまわし)」라는 포지션으로 설거지나 청소 등의 잡일이 주 업무였고 닭을 만져볼 기회는 전혀 없었죠.
2년째가 되고 닭을 만질 수 있었는데 재료 준비의 밑작업으로 식재료를 자르는 등 똑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할 뿐이었어요. 저는 가게에 들어갈 때까지는 칼을 거의 잡아본 적도 없어서 기술을 익히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 편이었어요. 저보다 어린 동료들은 점점 저를 뛰어넘어서 위를 향해 가고 있었죠.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꼬치를 굽는 야키바(焼き場)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과 내가 정말 일을 못한다는 현실이 찾아오는 딜레마. 손님 접객을 담당해도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등, 당시에는 제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가득했던 것 같아요.
―――수행 중에 보는 각도가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야키바(焼き場)에 설 수 있게 된 4년째 즈음일까요? 1년차의「오이마와시(追いまわし)」 작업과 그 후의 재료 준비, 언뜻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시시한 작업들의 반복이라고만 생각했던 경험들을 통해 길러진 감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예를 들면, 식기가 항상 있던 장소에서 조금 벗어나는 아주 작은 변화라던지, 닭고기를 만졌을 때에 부위별 두께나 꼬치를 꽂는 방식, 숯을 쌓는 방식에 따른 불의 변화나 열의 체류 차이를 조금씩 느끼게 되었어요. 야키토리의 소재를 자르고 불에 구워서 먹는 매우 심플한 요리이기 때문에야말로 사소한 차이를 몸소 느낄 수 있다는 건 장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죠. 의미가 없는 건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는 건 가게에 막 들어왔을 당시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스승님(親方)과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먹고 있으면 「찰떡궁합(阿吽の呼吸)」이랄까, 어느 순간부터 스승님이 생각이나 시선 끝에 무엇을 보고 있는지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겠는 거에요. 약 7년 정도【토리요시】에서 수행을 하면서 정말 많은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어요.
―――선대 스승님(親方)의 가르침 중에【토리시키】에서 계승한 것은 무엇이 있나요?
스승님의 야키토리가 훌륭한 건 기술의 정도(精度)만은 아니에요. 「정신력・기술・체력의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손님들을 향한 마음과 눈 앞의 식재료를 이해하려는 마음, 손님 및 생산자, 식재료에 대한 감사, 인간으로서의 상냥함이라는 당연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어요. 지금도 현역으로 활약하면서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철저한 분이시죠. 그 뒷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스승님께 인정받을 때까지 저는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계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독립한지 18년째가 되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매일 매일이 새로워요. 만약 손님들이 오시지 않게 된다면 가게를 접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날마다 「一串一魂(하나의 꼬치에 하나의 정신)」를 되뇌이고 있어요. 저희가 진심으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손님들께 기쁨이나 감동을 드릴 수 없죠.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연함을 계속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나 꿈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하나는 「평생 현역」이에요.
목숨이 붙어있는 한은 현역으로 계속 가게에 서고 싶어요. 제 자신 아직도 젊은 사람들의 표본이 될 정도로 완벽한 인간은 아니지만 서투른 인간이라도 똑바로 일과 마주한다면 손님들이 찾아와 주신다는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아요.
두번째는 일본의 야키토리의 매력이나 식문화를 계승해 나가는 젊은 세대들의 육성에 힘쓰고 싶어요. 야키토리의 매력을 하나 들자면 이렇게까지 디지털화가 되고 인간의 손을 떠나서 모든 것이 기계화 되어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숯으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서 먹는다는 가장 원시적이고 유일무이한 요리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아날로그적인 부분에 가치를 더해서 일본만의 식문화를 널리 퍼뜨리고, 장래에는 해외의 젊은 사람들도 「일본의 야키토리를 배워보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현재는 이미 수행을 끝내고 독립한 9명을 포함해서 일본과 해외에 약 30명 정도의 제자들이 있어요. 앞으로는 그들이 국내외에 「일본의 야키토리」라는 식문화를 퍼뜨리고, 수많은 손님들이 기뻐할 수 있는 무대에 도전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지해 주고 싶어요.
―――처음에 제자를 받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오픈 당시에는 부부 둘이서 조그마한 가게를 해 나갈 생각이었어요. 오픈하고 3년 정도 지났을 때 「견습생을 모집하고 있나요?」라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어요. 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야키토리의 즐거움을 잊지 못하고, 야키토리를 평생 직업으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었죠.
견습생을 받기 위해서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게 할지 구체적인 체재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후에도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환경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죠.
―――현재는 국내외로 점포를 전개하고 있는데 어떤 목적인가요?
매상을 늘리기 보다도 사회적인 배경에서 오픈 10주년을 계기로 점포를 조금씩 확장하게 되었어요.
이유는 두 가지였죠. 첫번째는 젊은 사람들이 실천의 장소로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였어요. 가게 안의 야키바(焼き場)에서 그들이 연습을 하려면 일이 끝나고 재료 등을 준비하기 전 뿐으로 매우 한정되어 있죠. 저도 수행 시절에는 영업이 끝나고 심야 한 시가 넘어서야 야키바(焼き場)를 빌려서 연습을 할 수 있었는데 보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을 느끼고, 일정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경험을 더욱 쌓을 수 있는 가게를 만들게 된 거죠.
두번째로는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셰프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에요. 이건 제 경험담인데 회사원을 그만 두고 수행을 시작한 당시에 급여가 그 전의 반으로 줄었어요. 휴일에는 운송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에 보태고 있었는데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장인 어른이 걱정을 많이 하셨죠. 그리고 독립할 때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데도 많이 고생했거든요. 차세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셰프로서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으로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좀처럼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되잖아요.
―――마지막으로 이케가와 씨에게 있어서 「맛있다」란 무엇인가요?
「맛있다」라는 것은 맛 뿐만이 아닌 복합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식사를 하는 시간과 공간, 함께 있는 사람 등의 식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잘 들어맞았을 때에 「맛있다」가 성립하는 것이 아닐까요? 식재료나 조리법에 타협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손님들의 소중한 시간을 믿고 맡겨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그 중에서도 저는 평소부터 「흑자」라는 말로 표현하고는 하는데 손님들의 공기가 될 수 있는 「흑자」에 충실하여 손님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다가서는 것. 한정된 하루의 소중한 시간에 【토리시키】를 선택해서 방문해주신 손님 한 분 한 분께 야키토리라는 수단을 통해서 「맛있다」를 느끼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 장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게는 카운터 석만 있는데 자리 하나 하나를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프라이빗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프라이빗룸의 문을 두드린다는 마음으로 손님들의 대화 상황이나 식사의 리듬에 다가가면서, 식사를 즐기실 수 있도록 스태프 모두가 한마음으로 계속해서 노력해가고 싶어요.
이케가와 씨가 「대치하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야키바(焼き場)에서 고기와 숯의 변화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응시하는 표정에는 한치의 흔들림이 없고, 긴장감이 감도는 빈틈 없는 모습은 무사의 검술과도 같다. 허리춤에 끼워 넣은 커다란 부채가 사무라이의 검처럼 보였다.
수행을 시작한 당시에는「야키토리를 완전 쉽게 보았다」라며 웃음을 띄던 이케가와 씨. 자신의 미숙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야말로 연찬을 쌓은 지금도 더욱이 자신을 훈계하고 관리하며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궁극의 꼬치를 추구하며 수많은 손님과 문하생이 이케가와 씨의 가게를 찾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취재・글/야나기야 유리
촬영/나카오카 아즈사
'일본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야키토리 가게'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 있는 '토리시키'. 재료와 불에 대한 고집으로 오픈 3년 만에 야키토리 가게로는 최초로 미슐랭 1스타를 획득했다. 명실상부한 인기 레스토랑.




